선생님

고 순 덕

 

 오늘은 잠시 내게 캘리그라피를 지도해 주었던 선생님을 오랜만에 만나러 가는 날. 공연히 마음이 설레고 신이 난다. 몇 년 전 우연히 접하게 된 캘리그라피는 처음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수업을 받고 보니, 글씨쓰기도 재미있었지만, 선생님이 더 좋았다. 우유부단하고 게으른 나와는 달리 선생님의 모습은 당당해 뵈었고, 밝고 긍정적이어 보였다.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새로운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모습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부끄러웠다. 그래서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입적, 짝사랑하고 있다.

 
 

 그 외에도 선생님하면 역시나 학창시절 선생님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선생님!” 하고 부르면 “엄마~~”하고 부르는 것처럼 가슴 먹먹한 선생님이 계신가 하면, 벌이 끔찍했던 선생님, 숙제를 유난히 많이 내던 선생님, 존함보다 별명이 먼저 떠오르는 선생님도 계시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처음 접한 선생님은 국민학교 1학년 때의 담임 함순정 선생님. 선생님은 천사 같았다. 뽀얀 얼굴에 예쁜 바람머리, 조용한 음성, 사투리는 전혀 쓰지 않았고, 선생님은 무얼 먹거나 변소도 가지 않는 줄 알았다. 숙제검사로 빨간 동그라미 다섯 개를 그려주시던 선생님.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지금도 선생님은 그 때 그 모습으로 살아계실 것 같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이렇게 좋게 기억되는 선생님도 계시지만 지금껏 내 가슴속에 죄스러움을 안고 있는 분도 있다. 역시 국민학교 4학년 때의 담임 김병조 선생님. 선생님은 새마을담당으로 방과 후나 실과시간에 학교 옆 텃밭에 도라지를 심고 가꾸는 일을 우리와 함께 했다. 뙤약볕 아래서 풀을 매고, 변소 똥거름을 내게 하는 등 집에서도 하지 않던 노작활동이 싫었다. 그래서 학교의 대장인 교장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교장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4학년 1반 고순덕입니다. (중간생략)

저는 학교에 공부를 하러 온 것이지, 일을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 담임선생님을 바꾸어 주십시오!“

 그 때의 난 교장선생님이 학교에서 제일 높은 분이니 당연히 마음대로 담임을 바꾸어 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다음 날, 교장선생님께서 직접 교실로 나를 찾아 오셨다. 나의 손을 꼬옥 잡고 밭에서 일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고 싫었구나 하면서 토닥여 주었다. 하지만 결론은 담임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교장선생님도 교육청인가 뭔가의 한 직원이고, 학교에서는 제일 나이가 많고 어른이지만 그런 것들은 교육청에서 정하는 것이란다. 나의 역모는 수포로 돌아가고, 소심한 반항은 끝나지 않았다. 체육시간에 뜀틀위에서 앞구르기를 하는데 옆으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지 위해 선생님께서 잡아주려고 서 계셨다.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붕대를 감아서인지 빵모자를 쓰고 다니시던 선생님의 머리를 향해 넘어지는 척 발을 내밀었다. 참 철부지하고 못된 열한살 이었다. 고등학생 때 선생님을 찾아가 사과랍시고 죄스러운 마음을 전했지만, 선생님은 그저 웃으실 뿐 그 일을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하셨다.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동창회에 먼저 나와 나를 불러 주시던 중3 담임선생님. 그리고 학교만 가면 뵐 수 있었던 지루하고 묵은 선생님들과 달리 풋풋하고 잘생긴 교생선생님의 출현은 그야말로 탄산음료 같았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수업을 빼고 놀 욕심에 야외수업하자, 첫사랑 이야기 해 달라 등등 선생님을 졸랐다. 그러면 얼굴을 붉히며 전전긍긍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더욱 열광했다.

 여고의 선생님은 거의 연예인을 방불케 했다. 당시 유명 의류 브렌드인 죠다쉬의 말대가리형 두상을 가졌다하여 “죠다쉬”로 불리웠던 선생님은 수업을 듣지않았던 나도 기억되는 선생님이다. 선배들로부터 내려온 별명의 “똥차”선생님은 수업중 위생차 멜로디가 들리면 수업을 진행하던 톤 그대로

“저 자식은 형님 여 있는 줄 어찌알고, 저리 따라다니는동?”

해서 한바탕 웃음으로 지루함을 날려 버리기도 했다.

 인기가 많았던 총각선생님이 결혼한다는 소문에 학교의 분위기는 술렁였다.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짝사랑을 정리하거나, 더욱 행복해 지시길 기도하는 파, 신혼여행 가시게 되면 며칠간 수업 듣지 않을 기대에 부푼 파,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며 학급비를 모으는 등 천태만상 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생각나는 선생님. 감사했던 선생님, 재미있었던 선생님, 미웠던 선생님, 무서웠던 선생님. 그리고 지금껏 내 인생에 길라잡이가 되어주시는 선생님. 선생님은 단순 벌이를 위한 지식전달의 직업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어렵고도 막중한 일이라 생각한다. 지금 내 가슴과 머리에 남아 있는 선생님들은 모두 그 일을 충실히 하신 분들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君師父一體라 하지 않았던가? 오래도록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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