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날

고 순 덕

 

 
 

“언니 귀신 날 마을 부녀회 윷놀이 한다는데, 그 날 올 수 있어요?”

“귀신날? 그기 운젠데요?”

“언니 귀신 날 몰라여?”

“글쎄 그기 뭔데요?”

“정말 몰라여? 아 왜 우리 어릴 적에 귀신 날이라 해가이고 밤에 신발을 업고 놓고 자고 막 그랬잖아요. 언니넨 안그랬는가?”

 일주일 전 친구같은 시누한테서 전화가 왔다. 귀신 날이라니,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그래서 인터넷에 검색해 봤다. 귀신 날! 우리의 세시풍습 중에 정월 대보름을 보낸 다음 날을 귀신 날이라 했다. 이 날은 귀신이 많이 돌아다니는 날이라 하여 바깥출입을 금하고, 밤에는 신을 방에 들이거나, 업어 놓고 잤다고 한다. 귀신이 발에 맞는 신을 찾기 위해 이 신, 저 신에 발을 넣어 보는데 이 때 신어본 신의 주인은 그 해 좋지 않은 일을 겪게 된다하여 이런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또 귀신은 숫자 세기를 좋아하는 습성이 있기에 이날은 문 앞에 체를 걸어두어 그 구멍을 세는데 정신을 팔려 사람들에게 해꼬지를 하지 못하고 날이 새면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정말 신을 방에 들이고 잤던 기억과 함께 얼기미와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뿐만 아니라 엄마는 이 날 1년 동안 모아 두었던 머리카락을 태우기도 했는데 이 또한 머리카락을 태울 때 나는 악취로 귀신을 쫒기 위함이라 했던 것 같다. 논두렁과 밭두렁에 불을 놓기도 했고, 우리들은 그 옆에서 불깡통 돌리기를 하며 놀았다. 발에 가시가 들지 않게 하기위해 널뛰기도 했으며, 그 옛날 무속신앙은 분명 아니면서 이상한 행위을 하는 풍습들이 정월에는 유난히 많았다.

“뱀 치자. 뱀 치자!”

 를 외치며 새끼줄을 길게 늘어트려 집 주변을 돈 후 태웠던 뱀 치는 날, 신라시대부터 내려온다는 약밥이나 오곡밥을 해 먹는 까마귀 제삿날, 용날인가? 어떤 날은 음식을 할 때 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날도 있었다. 말날에는 장을 담았고, 정월 송편은 약이라며 송편을 빚어 먹기도 했다. 소에게 밥과 나물반찬을 두고 먼저 먹는 것에 따라서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했으며, 아침부터 술을 공식적으로 마실 수 있는 귀밝이술에 대한 풍습도 있다.

 지금은 오곡밥도 부럼도, 귀밝이술도 챙기지 않은 내겐 퇴색된 명절이지만, 아직까지도 시골마을에서는 동고사라하여 마을의 오래된 나무나 신령스런 어떤 곳에서 제를 올리고 있다.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함께 소원하며......

 사실 귀신 날은 정월 보름에 열심히 놀고 난 다음날 곤하기도 하여 쉬고 싶은 마음에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도 한다. 정월 보름날은 뭘 모르던 어린 우리들에게도 무척이나 좋은 날이었다. 설날 못지않게 먹을 것이 많았고, 마을에 풍물패가 종일 이집저집을 다니며 술판을 벌였고 춤을 추었다. 마을회관 마당 한쪽에선 커다란 가마솥에 선지국이 구수한 냄새를 내뿜고 있었고, 우리집 부엌 선반엔 빠꼼양제기(작은 구멍이 난 양푼이)에 찰밥이 가득 했다. 감기에 누런 코를 훌쩍이면서도 종일 풍물패의 뒤를 쫒아다니거나 들판에서 불깡통을 돌리며 놀았다. 그러다가 허기가 지면 부엌으로 쫓아 들어 차디찬 찰밥을 커다랗게 한숟가락 떼어내 맨손으로 먹으며 다시 집을 나섰다. 이 날은 종일 그렇게 뛰고 놀아도 누구하나 야단을 치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아 좋았다. 밤이 늦도록 빈 논바닥을 돌아다니며 불깡통을 돌리고 던지며 놀았다. 그러니 다음날은 어른도 아이들도 곤할밖에...... 그런데 다음날이 마침 귀신 날이라니 참 절묘하다. 아니 이 또한 조상들의 지혜라 해야 할까? 빙그레 웃음이 절로 난다.

 오랜만에 내린 비소식에 운전조심하라며 작은 오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빠야!”“왜?”“내 더위 사가라고.”“그래 고맙네. 내가 사깨. 이 추운데 동생 더위 내가 따뜻하기 잘 쓰께.” 한다.한 번 더 빙그레 웃음이 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친구같은 시누가 보름나물이라며 미역 튀긴 것까지 얹어서 반찬통을 건넨다. 오랜만에 내린 단비와 함께 사람의 온정을 맛본 따뜻한 정월 보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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