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방 속 스타들

고 순 덕

 젊은(?) 청소년 이었던 배우 최재성은 나의 우상이었고, 책갈피로 코팅된 그의 사진을 마치 부적처럼 지니고 다녔다. 매주 토요일 낮차시각까지 여유가 있는 날이면 당시 피닉스라고 하는 소규모 백화점 내에 있는, 스타들의 브로마이드나 사진 등을 팔거나 코팅해 주는 가게를 들리는 것이 여고시절 최고의 즐거움 이었다. 중학생 땐 촌아이여서인지 학교 앞 문방구에서 연습장이나 책받침, 아이스크림 콘 속에 들어있는 스티커 사진을 모으는 게 고작이었지만, 고등학생이 되어 시내 사는 친구들을 보니 차원이 달랐다. 스타들에 대한 집착이나 정보가 극성을 넘어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새로운 사진 한 장을 모으기 위해 비싸고 두꺼운 잡지책을 사는 것은 기본, 대형 브로마이드를 갖기 위해 열심이었다. 그리고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 그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들은 또 어떻게들 알아낸 것인지......

 
 

 김혜수, 김혜선, 이미연, 최진실, 이상아, 조용원, 최수지, 채시라, 하희라...... 다들 눈과 맘에 선한 모습들일 것이다. 이에 바다 건너 브룩쉴즈, 소피마르소, 피비케이츠, 율부리너, 클라크케이블, 제임스딘, 아랑드롱 대륙의 왕조현, 장만옥, 장국영, 주윤발, 성룡, 이소룡 등등. 뿐만 아니라 장르를 넘어 가수, 스포츠스타에 이르기까지 그 시절 책가방 속 책받침 스타들은 참으로 다양하고도 많았다. 고교생일기란 드라마의 주역들로 시작되었던 책받침의 하이틴 스타들은 프로야구가 인기리에 시작되면서부터 콘 속의 프로야구스타들도 책받침과 연습장, 코팅사진들에 등장을 했다.

 
 

 프로야구 원년, 삼성라이온즈와 MBC청룡, OB베어스, 롯데자이언츠, 해태타이거, 삼미슈퍼스타의 주전들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박철순, 이종도, 선동렬, 백인천, 김재박, 김봉연, 이만수, 이선희 등 난 개인적으로 청룡의 유니폼이 예뻣고, 롯데의 김민식을 좋아했으며, OB를 응원했었다. 그 때는 어려서 지역색을 몰랐던 때문이라 변명을 하고 싶다. 또 국내 남,녀 가수들은 물론 국외 가수나 그룹, 배우들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이름을 듣거나 노래의 전주만 들어도 “아하!”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거다. 당시에 여자가수로는 김완선이 독보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혜은이나 그 외의 가수들도 노래로는 유명하지만 지금은 책받침스타의 이야기다. 당시의 남자가수로는 조용필, 이용, 전영록의 얼굴이 책가방 속에서 함께 등하교를 했으며, 엘비스나, 마이클잭슨, 새로운 문명으로 놀라게 했던 보이조지도 있었다.

 
 

 아침 자습시간엔 서로가 새로이 획득한 사진이나 소식을 공유하고 자랑질 했으며 점심시간엔 서로 가지지 못한 사진들을 교환하거나 거래까지 했다. 방학이면 서울에 있는 이모댁에 올라가 사촌이 가진 많은 책받침스타들의 사진을 휩쓸다시피 가져와 전 학교에 배포하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짭짤한 용돈벌이가 되기도 했다. 물론 순조로이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경우 말다툼을 하고 우정에 영영 금이 가는 일도 생겼다. 그만큼 사춘기시절 우리들에겐 책받침 속 그들의 모습이 선망의 대상이었고, 열두시간도 넘게 갇혀진 학창시절의 스트레스 배출방법이기도 했다.

 야간자율학습시간엔 몰래 선생님의 눈을 피해 학교를 빠져나가 미리 예약해 둔 좋아하는 스타의 새로운 사진을 찾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은 또 교실이 들썩들썩 새로운 사진이 온 교실을 한바퀴 돌고서야 주인의 손에 들어가곤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권 사는 문제지를 두권 사야한다거나 책값을 올리는 거짓말, 또는 차비를 아껴야 했다. 요즘엔 부모들이 먼저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현장엘 같이 가거나 직접 표를 예매해 주기도 하지만 그 때만 해도 그런 호사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나의 큰딸은 학창시절 슈퍼쥬니어를 좋아했고 둘째는 동방신기를 좋아했다. 언젠가 둘째가 아끼는 쵸코렛에 동방신기 멤버 다섯명의 이름을 각각 적어 두었는데 이를 깨기 위해 큰딸이 몰래 두 개를 먹어버린 일이 있었다. 화가 난 둘째가 큰딸에께 언니가 먹었냐고 따져 묻자 끝까지 아니라고 발뼘을 했고, 둘째는 결국 큰딸의 책상 서랍에서 빈 쵸코렛 종이를 찾았다. 다음엔 슈퍼쥬니어 브로마이더가 찢기고, 둘의 다툼은 커질대로 커져 아버지 재판관 앞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날 판사님은 “가족이 중요하냐? 이 딴 머시마 가수들이 중요하냐?”며 두 딸을 호되게 다그쳤지만 그 당시 딸들은 가족보다 머시마 가수들이 중요했다.

 판사님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화해했지만, 둘의 감정싸움은 오래 되었다. 난 지금도 멋진 남자배우가 가슴 설레게 하는 배역으로 나와 여주인공에게 사랑고백이라도 할라치면 마치 내가 고백을 받는 것처럼 심장이 콩닥거리기도 하지만, 이젠 사진을 모으거나 그를 만날 수 없을까? 하는 공허한 고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 정도라면 우리 사위삼아도 좋겠다! 뭐 그런 다른 류의 공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나이가 들었듯 책받침 속 스타들도 나이가 들었으련만, 그들은 아직도 예전의 모습을 그대이다. 아니 모습은 변한다 하더라도 우리에겐 언제나 예전의 그 스타들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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