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리 알. 알이야기

고 순 덕

 

 “꼬끼오~~~!!!” 날이 밝아 옵니다. “꼬꼬댁 꼬꼬꼬.” 알을 낳았습니다. 눈도 없는 꼬꼬닭, 입도 없는 꼬꼬닭.

 
 

 가마솥에 막 밥을 안친 엄마는 닭장에 들어가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달걀을 알자리에서 꺼내어 온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젓가락 한짝을 들고 안방으로 든다. 아버진 헛기침을 하며 받아든 달걀의 뭉뚱한 부분에 먼저 젓가락이나 송곳이로 구멍을 내고, 검지손가락으로 막아 돌려 잡고는 다시 뾰족한 부분에 조금 더 크게 구멍을 내고는 한입에 쪼옥 빈 껍질만 남는다. 집에서 소와 오빠들 담으로 귀한 첫 달걀은 언제나 그렇게 아버지의 식전 입다심으로 상납되었다. 그리고 다음은 큰오빠나 작은오빠의 도시락 뚜껑이 닫히기 전 속뚜껑처럼 밥위에 얹어졌다.

 
 

 작은언니와 나 동생의 도시락엔 야채를 다져넣은 달걀부침을 짭짤하게 부쳐 네모네모 토막 내고 도시락 한켠에 담아 주었다. 그래도 이런 반찬을 싸 가는 날에는 점심시간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다 4교시가 끝나자마자 도시락 뚜껑을 자랑스럽게 열어젖힌다. 우리 집엔 마당가에 닭장이 있었고, 예닐곱 마리의 암수 닭들이 늘 있었다. 언젠가는 한동안 오리를 키워 달걀보다 크고 노른자 색이 더 진한 오리알 반찬을 싸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굳이 오빠들의 밥 위에 달걀후라이가 부럽진 않았지만, 그것을 유난히 부러워한 친구들도 있었단다.

 동기 중에 양계장집 아들인 석창이는 공부도 늘 전교1등 이었고 부자라 달걀후라이를 매일 도시락 위에 얹어 왔다. 다른 친구의 집엔 기르는 닭이 없는데다 할아버지 할머니에 삼촌, 부모님, 동생들 등 가족이 많다보니 어쩌다 달걀을 사 와 계란찜을 한 번 하더라도 그 종지에 숟가락을 꽂을 기회가 없었다 한다. 정말 어쩌다가 조금 남은 것을 긁어 먹었더니 그 고소함이란, 얼마나 맛이 났던지 친구는 지금도 달걀찜이 좋단다. 그 옛날 아무것도 넣지 않은 달걀찜을 상상하며 자주 만들어 먹어 보지만, 그 때의 그 맛이 나지를 않는다는데 그 이유는 뭘까? 내 생각엔 아마 가마솥에서 넘쳐 들어간 밥물이 빠져서가 아닐까 한다.

 
 

 예전에 울엄마의 달걀찜은 밥이 끓기 시작하면 쓰르륵 뜨겁고 무거운 가마솥 뚜껑이 밀려 열리고 가장자리에 먼저 간 맞춰 풀어놓은 달걀그릇을 올린다. 다시 뜸들이기 후루룩. 엄마는 얼른 찬물을 적신 헹주로 솥뚜껑을 닦는다. 그럼 이내 가마솥이 뿜어내던 증기는 눈물로 바뀌고, 아궁이의 불을 사그라지게 한다. 그럼 가마솥 안에서 밥물과 계란이 어울너울 넘나들며 굳어져 지금은 흉내 낼 수 없는 구수한 달걀찜이 된다. 내 추측이 맞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음식솜씨가 제법인 친구가 제 맛을 내지 못한다니 그 때문이 아닐까 하는 거다. 그리고 석창이네 옆집에 살던 다른 한 친구는 엄마가 자주 석창이네 가서 달걀을 사 왔지만 정품이 아닌 작거나, 실금이 간 것들을 사 왔다고 했다. 비품이어서 얼른 먹어야 하기도 했지만, 하루에 서너개씩의 도시락 반찬과 가족들 상을 채우려니 친구의 엄만 늘 달걀보다 많은 양의 물을 추가해 야채와 밀가루로 반죽을 해서 부친 달걀부침은 분명 달걀의 노란자가 들어갔음에도 허여멀건한 색을 띠고 있어서 “야 니는 달걀부침개가 왜 허였노?” 라는 친구들의 질문 아닌 질문들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달걀찜을 좋아하던 친구는 삼촌과 생긴 첫 비밀이 달걀밥을 해 먹은 일 이었단다. 어느 날인가 엄마가 들에 나가신 뒤 삼촌이 부엌 앞에 이 친구를 보초 세우고, 삼촌은 엄마가 아끼느라 숨겨둔 달걀을 꺼내 구멍을 뚫고 쪼옥! 하고는 친구의 입을 막을량으로 달걀밥을 해 주겠다 했단다. 삼촌은 역시 엄마 몰래 쌀뒤주의 쌀을 한줌 꺼내 달걀껍데기 안에 넣고 물을 부은 다음 불을 지폈다. 아궁이에 밀어 넣지도 못하고 붙인 불은 화력이 세어 이내 달걀껍질을 태우고 그 속에 밥은 다 익었는지 말았는지 노릇노릇 군침이 돌았을 거다. 그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을 하지 못하지만 삼촌과 가슴이 콩닥콩닥 엄마 몰래 첫 비밀이 생겼다는 두려움과 설레임이 기억에 생생하다는 친구. 동생이 아플 때면 엄마가 막 지은 따뜻한 밥에 달걀노른자를 넣고 진간장과 참기름, 깨소금을 넣어 싸악싹 비벼주던 계란밥도 일품이었는데......

 실은 두주 전 조카사위를 보기위해 서울 나드리를 했을 때, 첫 만남이지만 낯설지 않은 지인의 친구들을 만났다. 해물이 있는 찌개 위에 양파 받침을 하고 찬란한 태양처럼 동그랗게 떠 있는 달걀노른자. 그것을 두고 네 사람이 앉아 누가 먹어야 하나에 대해 논하다 ‘순디기의 글에 달걀이야기가 나올 때가 되었는데....’ 하는 것에 이야기가 모아졌고, 이런저런 자신들의 많은 경험들을 얘기하며 글감을 제공해 주셨다. 그리고 비슷한 시대를 산 사람들이라 그런가 친구들의 이야기와 공통된 것들이 많기에 친구들의 이야기로 대신하였으니 혹여라도 서운해 하지는 말아 주시길....

 그리고 열대야가 기승인 짧은 여름 밤 머리를 길게 풀어 헤치고, 얼굴이 뽀얀 달걀귀신 이야기로 등골이 오싹 더위를 날려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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