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서...

고 순 덕

 앉은뱅이 집귀신이 지난 주말엔 지인과 가까운 명소를 찾기 위해 나섰다. 여러 날 하늘을 가득매운 비구름이 다 어디로 갔는지, 눈부신 하늘엔 스치는 듯 흰 구름만 멀리서 듬성듬성 바람의 가는 길을 알려 준다. 깨끗이 세수한 산과 들은 초록이 짙어지고 찔레꽃 흐드러진 향은 가쁜 숨도 쉴 수 있게 발걸음이 멈춰진다. 목적지는 상주시 천봉산자락에 있는 영암각. 상주시의 큰 행사가 있을 때 채화를 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큰 바위에 얽힌 전설이 있는 곳으로 기도발이 잘 듣는다 하여 아이들의 건강과 안녕을 빌고 싶어 찾았다. 정확한 위치를 몰라 차를 마을 입구에 세우고 슬슬 걸어서 마을을 지나는데 정원이 예쁜 집, 커다란 집, 멋진 집, 공사중인 집, 잔디마당이 넓은 집, 내가 갖고 싶은 한옥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마을입구 옛 집이 한 둘 보이고, 산으로 오르며 잘 지어진 새 집들이 즐비한 새로 커지는 마을로 보였다.

 
 

 목적지 방문 후 다시 내려오는 길 이번엔 새 집들이 즐비한 반대쪽 돌담이 눈에 띄었다. 정갈한 앞마당부터 뒤로 길게 이어진 작은 돌들의 무더기. 발걸음이 뭐에 홀린 양 절로 끌려들었고, 한걸음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새로이 나타나는 골목길. 그 곳엔 낡은 대문과 담장을 타고 오른 담쟁이, 아직은 낮게 핀 나팔꽃, 민들레 홀씨가 소담스레 나를 올려다본다. 오를 때와 다르게 옛 생각을 절로 나게 하는 골목엔 낯선 이들의 웃음소리에 놀란 개가 짖어대고, 담장 넘어 인사하는 감꽃은 반가움 때문인지 우리 집의 그것보다 예뻐 보였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곳엔 아이들이 없었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골목 여기저기에 모여 재잘대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발자국도 없다. 어느 집인가 아기용품이 마당에 보였지만 그것을 쓰는 주인은 친구가 가까이 있을지 의문이다.

 
 

 “순더가 노올자!” 우린 잠만 깨면 모였고, 밥만 먹으면 놀았다. 흙이 보드랍고 바닥이 매끈한 길에선 공기와 고땅(땅따먹기)을 했고, 마당이 너른 곳에서는 고무줄과 목자, 배불떼기, 팔자놀이를 했다. 짚가리와 구루마(달구지)가 있는 빈집에서는 귀신놀이나 깡통차기, 숨바꼭질을 했고, 벽돌이 넘어진 담장에 사금파리와 풀들을 차려 두고 빤또깨미(소꿉장난)를 하고 놀았다. 매일매일을 놀면서 매일매일을 다투고 토라졌다. “흥 인제 니하고 안놀아여!!” 손이 닿았네 안닿았네, 금을 밟았네 안밟았네, 찾았네 못찾았네...... 그런데 밥만 먹으면, 잠만 자고 나면 모든게 무효로 돌아가고 다시 “꼬마야 노올자!” 우리 마을은 들이 넓은 고이라 공기돌이 귀했다. 냇가에 나가 치맛자락이나 윗옷 앞섶에다 한가득 공깃돌을 주워서는 옥골할매네 집앞에서 모였다.

 
 

 조막만하고 보드라운 새끼손 바깥쪽으로 굳은살이 박힐 정도로 공기놀이를 하고 놀 절도면 말 다했지 뭐. 처음 어릴적엔 애기공기라 하여 손등에 공깃돌을 하나 얹어두고 손가락으로 기듯 공깃돌을 모아 손등의 돌을 받으면 땡. 그러다 익숙해지면 세 개잡기, 네 개잡기, 숨은공개(딴 갯수를 숨겼다가 졌을 때 술래가 그 갯수를 맞추면 아웃, 틀리면 딴 것들을 확보해 두고 부활)를 하는데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미션을 행할 때 손이 다른 공깃돌을 건드리면 안된다는 점. 그 때문에 공기를 할 때 못지않게 기다리는 시간에도 집중을 요했다. 그러다 “야 너 지금 건들릿자나.” 했을 때 공깃돌을 획 뿌리면 결과에 승복하는 거고 “아이라 난 안건들맀어!”하면 싸움의 시작이다.

 
 

 그러면 옥신각신 말다툼을 하다가 결국 “아래(그제) 니 우리 집에서 감자 먹은거 내나!” “그만 넌도 우리집에서 밥 먹은거 다 내나” 뭐 이렇게 그 날의 공기놀이는 끝나고, “인제 니하고 안놀아여 씨!” 지키지도 못 할 폭탄발언과 함께 각자 동생을 끌고 집으로 흩어지지만 밥을 먹으면서 싸운 기억도 함께 까먹고(잊고), 잠을 자면서 줄 감자도 받아야 할 밥도 지워졌나보다. 잠시의 시간만 지나도 무슨 일이 있었냐 싶게 다시 공깃돌들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골목친구들. 고무줄을 하면서도, 고땅, 깡통차기를 하면서도 우리는 늘 그렇게 다뒀지만 진짜 말을 하지않거나 놀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런걸 보면 죽고 못 살 것 같아 결혼하고 이혼하는 부부들보다 더 사랑하는 사이었나보다 골목친구들은. 아닌지, 그건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이겠지!

 아무튼 오랜만에 나선 나들이에서 갖고 싶은 미래의 아름다운 집들과 정겨운 옛 골목길을 걸으며 나의 생각도 함께 유치해져 보았다. 앞으로도 금을 밟거나, 상대(?)를 건드리면 죽는다는 동심을 가지고 자신의 바른 삶에 충실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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