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 난방법

고 순 덕

고순덕
고순덕

 감고을 상주의 가을엔 이야기 축제를 한다. 지난해에는 ‘자전거와 나’라는 이야기 경연에 참가했다가 우연히 “빨간 자전거”의 김동화작가님과의 만남을 가진 일이 있었다. 작가와의 만남이란 코너에서 자전거의 도시 상주와 어울리는 빨간 자전거라는 만화작가 김동화님을 초대해 작품과 그의 문학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 같았다.

 내가 행사장을 어슬렁거리다 작가님의 행사장에 들어간 것은 거의 막바지였다. 평소 “빨간 자전거”를 따뜻한 책이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홍보를 하며 빌려주고 다니는 편이라 작가님을 직접 뵙고 얘기 한다는 것은 행운중의 행운 이었다. 그런데 채 10분도 안되서 끝이라니, 작가님은 추후 상주의 곶감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는 얘기를 끝으로 마무리를..... 아쉽고 서운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작가님께 질문하고 싶으신 분?” 하기에 무조건 “저요!” 하고 손을 들었다. 그러나 갑작스레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가슴은 콩닥콩닥 어~어~하면서 입은 당돌하게 또박또박 질문을 던졌다. “자전거와 감고을 상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평소 작가님의 빨간 자전거를 감명 깊게 읽고 또 홍보하는 한 사람으로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혹시 작가님은 상주의 감꽃이 1년에 몇 번 피는지 아십니까?” “상주의 감꽃은 제가 알고 있는 감꽃과 뭐가 다른가요? 한 번 피는게 아닌가요?” “네~ 제가 생각하는 상주의 감은 네 번, 다섯 번의 꽃이 핍니다.

 

 
 

처음은 작가님께서 알고 계신 그 꽃이 피구요, 둘째는 가을 날 초록의 잎새들 사이에 주황의 꽃이 핍니다. 세 번째는 겨울 날 처마 끝에서 붉은 속살을 드러내 눈속에 꽃을 피우고, 네 번째는 거두어진 곶감에 하얗게 분꽃이 핀답니다. 그리고 이를 먹는 사람들의 입가에 피어나는 행복한 웃음꽃이 그 마지막 꽃입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아도 유분수지 작가님 앞에서 주절주절 나의 당돌함은 어디서 기인된 건지 나 자신도 가끔씩은 놀랍다.

 어디 상주의 감꽃만 이렇게 여러 차례 필까? 내 살던 문경의 감꽃도 마찬가지. 봄의 끝자락 5월이 기울면 순박하고 청초하게 생긴 감꽃이 부끄러이 입을 벌렸다. 여름을 부르는 바람에 살랑살랑 땅으로 내린 꽃을 주워 감꽃 목걸이를 만들어 걸었다. 여름이면 감나무 그늘아래 동네 계집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공기놀이를 했고, 이른 가을이면 떨어진 감을 주워 담 위나 장독대 위에 올렸다 홍시가 되면 먹기도 했다. 운동회 때면 아직 떫은 감을 삭혀 간식으로 싸 가기도 했고, 초겨울 곶감에 앞서 분이 뽀송뽀송 난 감껍데기를 돌돌 말아서 먹으면 입 안 가득 달달함이 고였다.

 

지금은 사라진 먹거리 감껍데기. 몇 해 전 엄마생각이 난다며 감껍데기를 먹고 싶어하는 카친이 있어 감깍기를 끝낸 후 이삭감을 따다가 손깍기를 한 일이 있었다. 그러면서 나도 절로 엄마 생각에 빠져 들게 되었다. 가을밤이면 엄마는 아버지와 작은 오빠가 따 놓은 감을 한소쿠리씩 방으로 들여와 늦은 밤까지 과도를 들고 감을 깍았다. 졸린 눈으로 엄마 곁에 누워 들으면 사그락사그락 칼이 감과 감껍데기를 가르는 소리가 자장가 같았다.

 
 

 다음 날 아침이면 아버지는 처마 끝에 벌거벗은 감을 줄줄이 매어 달았고, 감껍데기는 지붕위 대발에 누웠다. 모진 겨울바람과 햇살이 번갈아 오갔고, 어느 날인가 아버지가 걸쳐 놓은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 먼저 마른 감껍데기를 몰래 씹어 보았다. 달달한 단맛이 베어났다. 얼른 한 줌을 끌어다 주머니에 쑤셔 넣고 동생에게도 몇 줄 나누어 주었다. 동생의 입을 막을량으로 일단 공범으로 만들어 두고, 친구 집으로 냅다 달렸다. 알뜰한 엄마는 감껍질을 얇게도 깍으셨다. 간혹 조금 도톰하게 깍여진 부분은 유난히 더 달고, 쫄깃함도 있었는데 가끔 엄마는 이것을 넣어 떡을 해 주기도 하셨다.

 지붕위로 오르락내리락, 다락으로 들락날락 겨울이면 엄마와 술래잡기를 하듯 곶감과 감껍데기를 숨기고, 몰래 찾아 먹곤 했는데, 상주로 시집와 본 광경은 놀라웠다.

 
 

 감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그 앞에서 작은 칼 하나를 든 외숙모는 새벽부터 해가 떨어질 때까지 꼼짝도 않고 그 산더미를 다 허물으셨다. 그리고 넓고 높은 감타레 안엔 병풍처럼 곶감들이 둘러서 줄타기를 했다. 상주가 감고을이라는 말에 이의를 달 수가 없다. 예전에는 남의 집에 가서 종일 감을 깍고 품값으로 감껍질을 받아 오기도 하셨단다. 아이들의 식량을 조금 더 늘일 심산으로 꾀 많은 사람은 일부러 감껍질을 두툼하게 깍기도 했다는데, 요즘은 기계로 깍으니 일정한 넓이와 두께로 돌돌돌. 이제는 감껍질을 먹는 이도 먹을 생각을 하는 이도 없다.

 
 

 상주에 정착한지 26년. 이젠 나도 상주사람이다. 겨울이면 그 귀하던 곶감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장사를 한다. 그 옛날 엄마만큼의 정성이 들었다고는 못하겠지만 엄마보다 더 많은 곶감들을 만지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곶감을 나처럼 먹으려 들지 않는다. 나처럼 인쥐가 되어 몰래 먹으려 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엄마에게도 내가 만든 곶감을 제삿상에서 말고 직접 드리고 싶은데......

 점점 더 추워지고, 길어지는 겨울 밤 달달한 곶감과 함께 도란도란 가족애를 두툼히 하는 난방법은 어떨까요?

저작권자 © 영남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